마치 신에게 소명이라도 받은 것처럼 모든 것을 뒤로한 채 하나의 목적만을 향해 달려가는 이들이 있다. 하나의 목적 아래 삶의 모든 질서가 재편되어 정돈된 상태, 그 압축된 간결함을 나는 열망했다. 그 목적이, 가진 파괴력만큼 대단해야 한다고 따로 결론 내린 적은 없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나는 무의식중에 그렇게 정리했던 것 같다. 삶의 의미에 대한 내 집착은 아주 오랜기간 나를 괴롭혔다.

마이 네임
출처: 넷플릭스

17번째 생일날 저녁, 지우(한소희)는 즉석 식품 두어 개로 차려진 상 앞에 혼자였다. 그 날은 그래도 생일이라고 평소 어디서 뭘 하는지 연락 한 번 되지 않던 아빠, 동훈(윤경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우는 '조폭 딸'로 소문난 자신이 겪고 있는 일에 대해 말하게 되고, 이에 동훈은 위험을 무릅쓰고 일부러 집을 찾아온다. 그런데 문을 여는 사이 나타난 의문의 괴한과 대치하게 되고, 인기척에 현관으로 나온 지우는 아빠 동훈의 죽음을 눈앞에서 본다. 그렇게 지우의 삶에는 질서가 찾아온다. 복수라는 대의 아래 모든 것들은 뒤로 밀려났다. 이름, 미래 그리고 목숨까지.

"아빠 죽인 새끼 잡겠다고 미래도 이름도 다 버렸어. 그 새끼 못 죽이면 내 인생에 의미 같은 거 없어."

지우의 절규가 슬프게 들렸던 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 이루고자 하는 그 일이, 결국 누구도 구원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사회적으로 아무 쓸모가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바로 그 무가치함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나는, 나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남이 보기에 아무 의미가 없지만, 나에게는 세상 전부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무가치함의 아름다움이 삶의 의미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킨 순간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삶이 반드시 세상에 남을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