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십 분째 프로그래밍 작업에 진전이 없었다. 나는 인공지능이 제시한 간단한 해답을 이해하지 못했다. 평소와 다르게 복도 문 여닫는 소음도 날카로운 파편처럼 날아와 박혔다. 점점 더 신경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마침내 나는 논리적인 생각을 조금도 이어나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내 안의 회복탄력성이 완전히 무너졌음을 깨달았다. 왜 이렇게 지친 걸까? 내 일련의 노력들이 오랜기간 성과를 내지 못했고, 그래서 보상을 받지 못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꺼냈다.
소설 속 노인, 산티아고가 처한 현실은 오랜 실패가 쌓인 결과처럼 보인다. 조업이 끝나고 밀가루 부대로 기워진 돛을 펼친 조각배 하나가 항구에 도착하면, 그것이 산티아고의 배다. 동료 어부들에게서 홀로 떨어져 고기잡이를 하는 산티아고는 지난 84일 동안 단 한 마리의 고기도 낚지 못했다. 산티아고는 운이 없는 사람이라 불렸고, 놀림과 동정을 샀다. 양성 피부암 반점으로 덮인 깡마른 몸을 이끌고 도착한 판잣집에는 마땅히 먹을 음식조차 없었다.
지난한 실패가 일상을 잠식할 때도 산티아고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정확히 미끼를 드리울 수 있음을 알았고, 운은 단지 아직 찾아오지 않았을 뿐이라 믿었다. 그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운 그 자체가 아니라,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것을 낚아챌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일이었다. 84일째 빈손으로 돌아온 저녁에도 산티아고가 묵묵히 어구를 나르며 어부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내면의 단단함은 다음날 새벽 조업을 나가기 전, 소년 마놀린과 커피를 마시며 건넨 '오늘은 자신감이 생긴다'라는 말에 무게를 더한다. 이는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의 헛된 희망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친 이만이 내뱉을 수 있는 철인(哲人)의 선언에 가깝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사유를 옮긴 '엥케이리디온'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고 다른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 아니다."
현대 실천 철학에서 '통제의 이분법'이라 일컫는 이 사상은 스토아 학파의 중추를 이룬다. 스토아 철학은 어떤 것이 가치가 있으려면 그것이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재물이나 명예는 있으면 좋지만 언제든 나를 타락시키거나 혼란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에 '무관심사', 즉 가치중립적인 영역에 속했다. 에픽테토스는 통제할 수 없는 사건을 마주했을 때, 그것이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들에 관한 것이라면, '그것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훈련시킨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무가치한 것이고, 우리는 무가치한 것에 상처 입지 않는다. 우리는 무가치한 것에 패배할 수 없다.
이 철학적 사유는 산티아고의 사투 속에 선명히 녹아있다. 85일째 정오 무렵 찾아온 거대한 청새치는 그가 온 힘을 다해 쫓은 목표였으나 동시에 통제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긴 투쟁 끝에 작살을 꽂아 그 거대한 놈을 배에 묶었을 때, 산티아고는 마침내 승리한 듯 보였다. 그러나 전리품을 챙겨 돌아오는 길, 작살에 찔려 바다로 흐른 청새치의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떼의 습격과 함께,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운명 앞에 선 한 개인의 무력함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
상어 떼는 가차없는 현실이었다. 상어 떼들에 의해 청새치의 살점이 뜯겨나갈 때마다 산티아고는 깊은 절망을 느낀다. 생명력을 쥐어짜낸 노력이 무(無)로 돌아가는 과정은 잔인했다. 산티아고는 급기야 청새치를 잡은 것을 후회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산티아고는 위대해진다. 그는 일어난 사건을 원망하며 손을 놓아버리는 대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산티아고는 상황을 수용하면서 그 안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점을 찾아내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런 태도는 곧 의지의 회복으로 이어졌다. 그는 다시 일어서서 몽둥이를 휘두르고, 칼을 묶고, 남은 키를 휘두른다. 평소 패배감에 잠식되어 있는 인간에게서는 결코 기대할 수 없는 회복력이었다. 처참하게 파먹힌 청새치를 옆에 두고도 그는 마치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이 절망스러운 투쟁 끝에 결국 고기를 모두 잃을 거라고 어렴풋 짐작하면서도 그는 지금 이 순간의 투쟁만은 온전히 자신의 통제 하에 있음을 알았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항구로 돌아온 산티아고는 배에 단단히 붙들어 맨 청새치를 그대로 두고, 판잣집에서 깊은 잠에 빠진다. 그곳에 몰려든 사람들은 청새치를 보고 경탄했다. 가로등 불빛 아래 뾰족한 주둥이가 달린 시커먼 머리통으로부터 18피트에 달하는 거대한 백골이 드러나 있었다.
오늘 내가 심적으로 무너진 것은 내가 나의 청새치 백골들을, 패배의 흔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판잣집에 누워 평온한 얼굴로 잠든 산티아고는 어땠을까?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했던, 자기효능감의 원천으로 바라보지 않았을까. 그렇게 믿고 싶다.